루치오 폰타나(1899-1968) Lucio Fontana, 작품명: 골고다 언덕
유채(혼합재료), 1955년작, 규격(미상)
루치오 폰타나(1899~1968) 그는 아르젠티나 산타페로사리오에서 태어나 6세가 되던해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하여 계속 살다가 1922년경 그의 아버지와 함께 다시 아르젠티나로 돌아와 조각작업을 계속한다.
그러나 그후 그는 브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위해 다시 밀라노로 갔고 1930년 밀라노의 밀리오네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다. 1935년경까지 전통 미술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양식과 기법을 추구해 나아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다양한 반추상적 양식을 실험해오던중 1945년 그는 설득력있고 계통적인 방법으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실험을 계속한다. 그는 자신의 공간주의 개념에 기초하여 일정한 형식을 갖춘 형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학기술을 접목시키고자 시작한 그의 예술적 포부는 유럽회화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필요성이 더해졌으며 이른바 그 결과로 그의 새로운 작품들이 탄생되게 하는 계기가 되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물질을 에너지로 변환하고자 하는 희망과 4차원으로의 편입을 보여주게 된다.
예를 들어 폰타나의 유명한 “부키”(구멍) 연작가운데 하나인 (공간개념,1949~1950)에서 구멍이 뚫린 부키의 수평선은 결코 장식적 기능이나 구상적 기능을 단순히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직 회화적공간, 좀 더 확대하여 말하자면 초월적인 선험적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인 것이다.
매우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회화적공간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그가 켄버스에 구멍을 뚫어 만든 “부키”연작과 그 연작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찢어진 켄버스는 회화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개척하는 힘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전후 유럽에서 활동했던 많은 미술가들은 이미지와 개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무의식을 계속 활용하기보다는 인간경험의 보편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한 폰타나에 대한 기여도 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기, 즉 창조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우렸던 것이다. 1945년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과학과 기술을 접목시킨 유럽 국가의 전통회화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항상 실험적인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왔다.
그의 예술양식 면에서는 공간주의 창시자로 화가, 조각가, 모노크롬 회화, 또한 밝은 색채의 켄버스 화면에 칼로 찢거나 심지어는 구멍을 뚫은 켄버스, 신체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들이 당시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이즈음 그의 에세이에서 “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문을 열고 미술에 있어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림을 평범한 화면을 초월하여 무한히 펼쳐있는 우주세계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술회시킨다.
그는 결국 아방 가르드(Avan Garde)조각가로써 그는 다양한 테크닉에 관심을 가지고, 세라믹, 도자기, 콘크리트, 인광물질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조형물을 창조한 나머지 예리한 표현주의가 두드러진 구상미술의 단계를 지나 오늘날 그는 “절대 추상에 대항하는 자유로운 추상”이라는 미술이론을 확립하게 되었다.
1939년 이태리에서 수차 전시회를 열었고 그의 ⌜백색선언⌟은 그가 학생 몇 명의 협조로 부에노스 어이레스에서 출판한 것으로 큰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이 백색선언의 주된 내용은 “우리들은 예술의 혁신을 계속한다.
우리들은 기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미 색종이와 석고등은 의미가 없다. 포럼의 변화가 요구되어진다. 회화를 조각을, 시를, 음악을 초월해야한다. 새로운 정신이 외치는 주장에 걸맞는 예술이 요구된다.
이미 알고있는 포럼의사용을 포기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한 예술의 발전에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대로 다분히 실험적 정신이 깃들어져있다. 이러한 내용 외에도 이들의 예술정신에 있어 사람들은 이제 형태 뿐만 아니라 본질에 있어서도 어떤 변화를 요구한다. 즉, 회화, 조각, 시, 음악 등을 초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새로운 정신의 요구에 걸맞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국 형태와 색채가 미술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생명력 없는 이미지에 사람들은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라고 보고 유기적 운동의 미학으로 정지된 형태의 미학적 무기력함을 대치하게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울러 색채, 공간의 요소, 이런것들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존재의 4가지 차원을 포괄하는 새로운 미술의 근본적인 형태들이라고 갈파했다. 만년에 접어들면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곤 했다. “내 그림에 뚫린 구멍 저너머에는 새로이 획득한 자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명백하게도 미술의 종말 또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