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나중에 나온다.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대 방향으로 간다. 그곳이 불구덩이인줄 알면서도. 미국에서는 이들을 망토 걸치지 않은 영웅이라고 하지 않던가. 알라딘이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이, 올리브가 뽀빠이를 외치듯이, 위기에 처한 우리들이 “119!” 하고 암호를 대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영웅.
소설가 김훈이 오죽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직업이라고 했을까. 그의 말에는 소방관에 대한 일상의 미안함이 가득 뱄을 터다. 우리들이 무지막지하게 부려 먹어왔으니까.
소방관 한분을 만났다. 제복을 벗은 그는 뜻밖에도 여느 직장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검은 먼지 털어내고 하얗고 말쑥한 차림새에서 파이어 파이터로서의 강인함보다는 부드러움이 먼저 나를 반긴다.
그를 품고 있는 건물은 몹시 낡고 허름하다. 반세기를 넘긴 그의 나이보다 더 많다나. 수려한 맵시를 자랑하는 시청사, 군청사, 구청사들. 심지어 동사무소 격인 주민자치센터까지 산뜻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은 지 벌써 오래다.
소방관이 지방직인데다 그들의 관할기관이 중앙정부 아닌 지방정부여서 그들과 그들 직장에 대한 투자순위는 늘 선심행정에 밀려버린다. 빠듯한 살림살이이다 보니 화재진압용 장갑까지 제 돈으로 사다 써야 한다니.
새 정부가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해준다던데, 그럼 대우가 많이 달라지나요? 내 질문에 그 소방관은 멋쩍은 웃음만 짓다가 겨우 몇 마디 거든다. 뭐, 월급이야 달라지겠어요, 다른 직렬의 공무원들이 얕잡아보는 건 좀 덜하지 않을까 싶네요, 직업에 대한 자존감도 더해질 테고요.
띄엄띄엄 털어놓는 그의 얘기가 기가 막혀 내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 글로 옮긴다. 오래 전 어느 광역단체장과 얽힌 거다. 소방당국에서 고층 건물의 신속한 화재진압을 위해 고가 사다리차를 사달라는 결재서류를 관할 단체장에게 올렸다.
그 단체장은 도정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사람들로부터 꽤나 유능하고 합리적인 공직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세간의 평가는 그로 하여금 한때 차기대권을 꿈꾸게 할 정도였다. 결재서류를 보던 단체장이 대뜸 이렇게 묻더란다.
이 사다리 차 한 대가 연간 올릴 수 있는 수익은 얼마냐?, 하고. 당황해서가 아니라, 지방정부의 수장이라는 분의 입에서 나온 말에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으로 집무실을 나오고 말았단다. 고층건물들은 속속 들어서고 화재진압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는데 교육비 부담된다고 직무교육까지 제한하는데도 있다나. 그게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현주소였다.
그와 헤어지면서 문득 떠오르는 한 편의 시.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 너무 늦기 전에 /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 공포에 떠는 /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 …’
이 시는 스모키 림이라는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 소방서 소속 소방관이 썼다. 어느 날 화재 현장에서 불 속에 갇힌 어린이 3명이 도움을 받지 못해 숨지자 괴로움을 이겨내려고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이들 영웅을 제대로 대접해줬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소방관들의 기도와 열정에만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맡길 수만은 없지 않은가.
[2017년 7월 17일 제90호 19면]